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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28화) 2023년 7월 16일 무언가를 처음 발견하는 일은 가슴 설레이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그런 발견을 하는 것은 더욱 설레이는 일이다. 오늘 출근길에도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했다. 초록섬에 가보니 몇일 사이 강아지 꼬리 같기도 하고, 송충이 눈썹 같기도 한 강아지 풀들이 초록섬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민들레의 시대는 가고, 자주달개비의 시대도 가고, 이제는 너희들의 시대가 왔구나. 쥐며느리 한 마리가 열심히 풀을 기어오르기에, 그 모습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런데 쥐며느리가 겁을 잔뜩 먹고 벌벌 떨다가, 풀잎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겁을 줄려고 한 건 아닌데, 쥐며느리에게 갑자기 미안해졌다. 다음부터는 바닥을 기어다닐 때만 찍어야겠다. 그런데, 쥐며느리가 떨어진 자리를 가만히 보니 달.. 2023. 7. 16.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27화) 2023년 7월 13일 오늘은 운이 좋다. 출근길에 초록섬을 지나치다가, 혹시나 해서 뾰족풀이 쓰러진 자리를 훑어보았는데 반가운 분이 그 그 위에 앉아 있었다. 최근 뾰족풀들이 뽑혀나갈 때 혹시 변을 당하진 않았는지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어서 반가웠다. 초록섬에 뾰족풀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땅의 습기가 마르는 것을 좀 막아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습한 곳을 좋아하는 이 달팽이가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달팽이를 다시 만난 것은 반가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부디 이 달팽이가 다시 힘을 내어 이 초록섬에 살던가, 아니면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잘 이사를 했으면 좋겠다. 2023. 7. 14.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26화) 2023년 7월 12일 요즘은 매일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한다. 비를 맞은 뾰족풀의 줄기와 잎은 점점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그 위에는 처음 보는 곤충이 한 마리 있었는데,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니 휙 하고 뛰어다녀서 사진을 찍기가 힘들었다. 나는 이 초록섬을 관찰하며 한가지 노하우를 터득했는데, 그것은 바로 한 지점을 10초 이상 관찰하고 다른 지점으로 옮겨 가는 방법이다. 곤충들은 크기가 작고 보호색을 갖고 있어서 한번 쓱 살펴보면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에 최소 10초는 집중해야 잘 보인다. 다행히 초록섬 중간 지점을 계속 관찰하다보니 다시 이 롱다리 곤충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친구는 뒷다리가 길어서 그냥 "롱다리"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다음으로 나는 쓰러진 뾰족풀의 꽃봉오리를 만져보았는데, 그 안에서 뭔가 딱딱한 것이 만져.. 2023. 7. 14.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25화) 2023년 7월 11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깊은 숲 속에서 자라는 풀들을 보고 뜬금 없이 "잡초가 많이 자랐으니 뽑아야 한다"며, 제초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도 근처에서 자라는 풀들은 일단 인간의 영역 안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보는 눈이 많다. 보는 눈이 많다는 것은, 그 중에 이 풀들을 불쾌하게 바라보는 눈도 있고, 신기하게 바라보는 눈도 있다는 의미이다. 나도 만일 이 풀들이 우리 동네 길가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면, 불쾌하게 바라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저 출퇴근 길에만 이 곳을 오가는 사람이다 보니 이 풀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일 수 있다. 최근 초록섬의 풀들이 초토화된 이후, 뿌리채 뽑힌 자주달개비들은 서서히 분해되어 다시 초록섬의 일부가 되고 있다. 정말 이번에는 .. 2023. 7. 11.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24화) 2023년 6월 30일 달팽이를 만나 즐거웠던 날도 잠시, 오늘 가보니 초록숲이 다시 쑥대밭이 되었다. 이번에는 자주달개비까지 모두 뽑혀버렸다. 달팽이가 잘 살아있을지 걱정이 된다. 다시 이 풀들이 자라나려면 시간이 또 얼마나 걸릴까? 초록숲을 찾아오는 작은 생물들이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다시 생기려면 또 한참동안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풀이 자라고, 생명들이 찾아오고, 풀이 뽑히고, 다시 풀이 자라는 반복. 그것이 바로 이 초록섬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2023. 7. 1.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23화) 2023년 6월 26일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뭔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날. 오늘이 나에게는 그런 날이었다. 하루 종일 비는 오고, 모든 일의 결과가 안좋게 나타나는.. 항상 기회가 되면 초록섬에 가서 잠시 관찰을 하다가 가는데, 오늘은 왠지 그것도 내키지 않아서 그냥 휙 보고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자주달개비 아래에서 새로 나오고 있는 잎들이 눈에 띄었다. 최근 주민들이 초록섬의 풀을 벨 때 사라진 줄만 알았던 그 풀이 다시 잎사귀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기존의 줄기는 칼로 자른 것처럼 깔끔하게 잘려 있었다. 그러나 그 잘린 줄기의 사이에서 새로운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불과 몇 일만에 이렇게 새로운 잎이 나오다니 놀랍다. 이제 나는 이 풀의 이름을 '쭉쭉이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2023. 6. 26.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22화) 2023년 6월 23일 오늘은 우연히 초록섬의 가장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초록섬은 완벽한 사각형이 아니라, 모서리가 조금씩 튀어나와 있다. 아마 예전에 시멘트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 툭 튀어나온 곳에, 내가 지금까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이 살아가고 있었다. 바로 이끼였다. 키가 큰 식물들이 모두 뽑혀나가는 와중에, 이끼만큼은 편안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 별다른 타격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이끼는 아주 낮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이 이끼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 6. 26.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21화) 2023년 6월 14일 하루 사이에 초록섬에는 또 폭풍이 불었다. 이제 보니 주변에 사는 주민분들이 수시로 이 초록섬을 관리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완전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나의 편견이었다. 특이한 점은, 다른 풀들은 대부분 뽑아버렸는데 중앙의 자주달개비는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너무 예쁜 꽃이 피어있어서 살려둔 것일 수고 있고, 그게 아니라면 혹시 그 분이 이 자주달개비를 이 곳에 심은 분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이 초록섬의 식물들이 모두 있는그대로 계속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길가에 있는 이 작은 땅이 어떤 분에게는 화단일 수도 있다. 어쩔 때는 정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또 어떨 때는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몇몇 종을 빼놓고는 모두 뽑.. 2023. 6. 26.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20화) 2023년 6월 13일 처음에는 한 송이만 보였던 자주달개비의 꽃은 점점 그 수가 불어나고 있다. 이곳 저곳에서 각기 다른 방향을 쳐다보며 한창 꽃을 피우는 모습이다. 그러나 오늘의 주인공은 자주달개비가 아니라 민들레이다. 처음 민들레 꽃이 피는 모습을 본 것이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인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이 6월 13일인데, 아직도 민들레꽃이 피어있다. 물론, 꽃 하나가 3개월동안 피는 것이 아니라, 계속 피었다 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다. 꽃 하나가 지면, 또 다른 꽃봉오리를 만들어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지면 다시 꽃봉오리를 만들고.. 정말 끈질기다. 사람들은 무궁화를 가리켜, 꽃 하나는 잠깐 피었다 지지만 나무 전체로 보면 끊임없이 꽃이 새로 피기 때문에 끈기와 노력의 상징이라고 부른다. 풀 중의 무궁화는 .. 2023. 6. 26.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19화) 2023년 6월 7일 오늘은 자주달개비의 잎에 맺힌 물방울을 바라보았다. 자주달개비의 잎은 길쭉하고 뾰족한데, 잎에 물방울이 떨어지면 그것이 쉽게 주변으로 흩어지지 않고 잎을 따라 쭉 흘러 중앙에 있는 뿌리쪽으로 떨어진다. 자주달개비는 물을 얻기 위해 이런 전략을 쓰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바라보았다. 한편, 초록섬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얼굴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강아지풀처럼 생긴 것이 보이고, 자주달개비의 잎 아래에는 아주 작은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2023. 6. 26.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18화) 2023년 6월 1일 만일 내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라색 꽃을 보았다면, 아마도 그냥 "신기하다"라고 생각한 뒤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3개월 동안 한 장소를 관찰하다가, 풀이 자라고,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마침내 꽃이 핀 것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신기함'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오마이갓~"이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보라색 꽃을 향해 다가갔다. 잎이 길고 뾰족해서 그냥 '뾰족풀'이라고 불렀던 풀에서 보라색 꽃이 피어났다.꽃잎은 3장, 노란색 수술은 6개씩 달려 있었다. 나는 이 척박한 보도블럭 틈새에서 꽃이 피어났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한참동안 꽃을 관찰했다. 집에 와서 도감을 찾아보니, 이 식물의 이름은 "자주달개비"였다. 북아메리카가 고향인 이 여러해살이 식물은 관상용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심어져 있다고 .. 2023. 6. 6.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17화) 2023년 5월 27일 황량했던 초록섬은 다시 초록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비를 맞으니 식물들은 더욱 짙은 초록색을 낸다. 다들 열심히 배를 불리고 이 작고 네모난 섬을 다시 정복하기 위한 경쟁에 열을 올리는 듯 하다. 초록섬의 중간에는 마치 화산섬의 중심에 솟은 화산처럼 키큰 풀 2종이 살아가고 있다. 분명히 저번에 모두 뜯겨버린 줄 알았는데, 어느새 다시 솟아났다. 누군가가 심었던 식물들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생긴 식물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생명력 하나는 정말 끈질기다. 식물들의 생명력에 감탄하고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순간, 보랏빛을 머금은 작은 꽃봉오리 7개를 만났다. 온 몸이 짜릿해지는 순간이었다. 초록섬 중간에 솟아난 뾰족뾰족한 풀, 나는 그 풀을 그냥 "뾰족풀"이라고 혼자 부르며 관찰을 계속해왔다. 이제 꽃이 피면, .. 202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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