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배수로에 들렀다. 오늘은 또 무엇을 보게 될지 약간의 설레임을 느끼며 산책로로 향했다. 그러나 오늘은 배수로의 모습이 이전과 달랐다. 배수로 속에 있던 낙엽과 흙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고, 고여 있던 물은 대부분 말라 있었다. 배수로에 가득했던 올챙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 배수로를 관찰하기 전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배수로가 깔끔해졌으니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배수로를 청소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니까 말이다. 배수로가 막히면 물이 넘쳐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머리로는 당연히 그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이상하게 깔끔하게 치워진 배수로를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인부들은 배수로 속의 낙엽과 흙을 퍼서 주변에 쌓아두었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올챙이들의 무덤으로 보였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에 조금 말을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아름답다. 아름다우면 자주 보게 된다. 자주 보면 친구가 된다. 친구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 친구가 안좋을 일을 당했을 때 나도 슬퍼진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생물을 관찰하는 취미가 아주 즐거운 취미라고 소개를 해왔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생물들과 친해지다 보면 즐겁지 않은 일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배수로를 청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야할 것이다. 올챙이들도 살고, 사람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배수로에 사는 생물들이 운명처럼 겪어야 하는 고난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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