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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하기/뒷산 배수로 생물 관찰기

<뒷산 배수로의 생물들> (22화) 유혈목이의 사냥 _2024.5.17.

by 토종자라 2024.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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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는 25도까지 기온이 올라갔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점심시간 산책을 시작했다. 회색 연못 산책을 할 때면 항상 마음 속으로 초심을 다잡는다. 어떨 때는 너무 피곤해서 산책을 하기 싫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그동안 회색연못에서 만났던 예상치 못한 풍경들과 생물들을 생각한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산책을 시작했는데, 그 때는 몰랐다. 지난 1년간 이 회색연못을 관찰하며 본 풍경 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볼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회색 연못 앞에 도착한 나는 잠시 쭈그려 앉아서 개구리들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낙엽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고개를 더 숙이고 안쪽을 살펴보았더니, 뱀이 있었다. 작은 뱀이 아니라, 꽤 크기가 큰 뱀이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뱀은 유혈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뱀이 물고 있었던 생물이 정확히 무슨 종인지는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개구리라고 하겠다.
아직 사냥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개구리는 열심히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뱀은 절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나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뱀은 도망가려고 하였다.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고,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배수로 철창 위로 조심히 올라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자 뱀은 회색 연못에 있는 비밀 통로로 스르륵 하고 숨어버렸다. 나는 그 비밀 통로 안 쪽에 꽤 넓은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오늘 찍은 영상을 계속 돌려보며, 개구리가 무슨 종인지 고민했다. 확실히 산개구리 종류는 아닌 것 같고, 두꺼비나 물두꺼비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사진을  보다 보니, 이 사냥 장면이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이 배수로의 생태계가 굴러가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오늘의 짜릿한 관찰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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