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월요일이었지만 나는 휴가를 썼기 때문에 쉬는 날이었다. 카페에 가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었는데, 문득 오늘 한번 배수로에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느라 일주일 동안 배수로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베트남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오후 10시 이후 호텔 근처에서 시끄러운 울음 소리가 나서 가까이 가보니, 두꺼비들이 울음 소리를 내며 엉금 엉금 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두꺼비나 개구리들은 야행성이었다.
나는 내가 이 배수로를 관찰하면서 단 한번도 어두운 밤에 그곳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따라서, 오늘은 아무리 귀찮아도 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번 배수로에 가보기로 하였다. 야행성인 그들이 나타나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참 궁상맞은 생각이다. 어두컴컴한 밤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 배수로에 가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한번 해보기로 했다. 오후 7시쯤 카페에서 나와서 배수로를 찾아갔다. 오후 7시 9분에 해가 질 예정이었지만, 아직 주변은 훤하게 밝았다. 배수로 인근에서 노루들을 끊임없이 마주쳤다. 그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배수로 근처로 내려가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헐레벌떡 산으로 올라가버렸다. 배수로는 노루들이 물을 마실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장소였다.
오후 7시 20분, 아직도 주변은 밝았다. 아무래도 스마트폰에 내장된 후레시로는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인근에 있는 마트에 가서 손전등을 사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작은 손전등이 없어서 그만두었다. 다시 배수로로 돌아가니 7시 40분이 되었다. 나는 열심히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서 배수로를 수색했다. 노루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크게 들렸다. 나무들에 가려, 인근에 있는 마을의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0분 동안 수색을 했는데도 나는 개구리들을 만나지 못했다. 역시 궁상맞은 일이었다고 자책하며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만 더 배수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색해보았다.
나는 꿈틀거리는 긴 나뭇잎을 보았다. 뭔가 해서 가만히 지켜보았는데, 그 나뭇잎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자세히 보니 그 나뭇잎에 다리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나뭇잎이 아니라 도롱뇽이었다. 순간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나는 바로 엎드려서 손을 뻗은 뒤, 카메라 후레시를 5번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다. 도롱뇽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서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손바닥 크기 만한 도롱뇽이 이 배수로에 살고 있었다. 심지어 이 배수로는 항상 물이 고여 있지도 않고, 배수로 중간 중간에만 아주 얕게 물이 고여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이 배수로에 도롱뇽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개구리를 찍으려던 나의 계획은 실패했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이에서 야생 도롱뇽을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을 보면, 왜 낮에는 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 알 수 있다. 색깔도 낙엽과 비슷하고, 전체적인 모습도 길쭉한 낙엽처럼 생겼다. 낙엽 아래에 가만히 숨어 있으면 이들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종종 밤에 관찰을 진행해봐야겠다.
'관찰하기 > 뒷산 배수로 생물 관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뒷산 배수로의 생물들> (20화) 올해의 첫 개구리 관찰 _2024.4.27. (0) | 2024.04.29 |
---|---|
<뒷산 배수로의 생물들> (19화) 길고 긴 장벽 _2024.4.25. (0) | 2024.04.29 |
<뒷산 배수로의 생물들> (17화) 올챙이와 눈을 마주쳤다 _2024. 4. 16. (0) | 2024.04.16 |
<뒷산 배수로의 생물들> (16화) 도롱뇽 알의 미스테리 _2024.4.12. (0) | 2024.04.16 |
<뒷산 배수로의 생물들> (15화) 새끼뱀과의 만남 _2024.4.8. (0) | 2024.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