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 해설사 선생님이 해설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한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가 인상 깊어서 기록해두려고 한다. 이야기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해설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안 중요한 것이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람들을 진심을 갖고 대하는지 여부이다.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앞에 있는 사람이 지금 자기를 진심으로 대하는지 아닌지를 바로 알아차린다. 진심이 아니라 가식이 느껴지면, 사람들은 해설사를 경계하고 멀리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면 일단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자격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도 중요하다. 진심을 갖고,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어울릴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부담스럽게 억지로 눈을 맞추면서 악을 써서 어울리라는 것은 아니다. 서서히, 선을 너무 빨리 넘지 말고, 조금씩 어울리면 된다.
사람들에게 당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보라. 직장이 아닌 일상에서 주윗사람들에게 그렇게 먼저 다가가본 적이 있는가? 가식이 아니라 진심을 갖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라. "저 사람 오늘 기분이 어떨까?", "저 가족은 이 숲에 무엇을 하러 왔을까?" "저 분은 취미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무엇이 궁금할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다보면 점점 그들과 어울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도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만약 숲에서 이 단계까지 왔다면 그 때부터는 해설사가 무슨 게임을 하자고 하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던 훨씬 잘 먹힌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다른 것 아무것도 안하고, 사람들과 그렇게 숲 속에서 실컷 어울리고만 돌아와도 충분하다. 한마디로, 그 해설사는 퇴근해도 된다.
그러나 순서가 바뀌면 어떻게 되는가? 먼저 사람들과 진심으로 어울리려고 하지 않고, 그들은 학생이고 나는 선생님이라는 생각으로 뭔가를 가르치려고만 하면 그들은 해설사의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하고, 아무리 재밌는 게임을 제안해도 정적만이 흐를 것이고, 사람들은 침묵할 것이고, 당신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당신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최대한 빨리 끝나기를 바랄 것이다.
입장 바꿔 한번 생각을 해보라. 어느 유적지나, 박물관이나, 국립공원에 갔는데 해설사가 처음부터 광합성이 무엇이고, 이 나무 이름이 무엇이고, 무슨 왕이 언제 무엇을 했고.. 구구절절 무엇인가를 알려주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갑자기 피곤이 밀려올 것이다.
탐방객들은 학생이 아니다. 성적을 받으러 온 것도 아니고, 돈을 벌러 온 것도 아니다. 대부분 무언가 재밌고 신나는 것을 찾으러 왔거나, 그냥 시간을 보내러 온 것이다. 또,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스마트폰만 키면 왠만한 정보는 모두 얻을 수 있는 시대이고, 내가 구독하는 유튜브보다 재밌거나, 웃기거나, 유익하지 않으면 바로 시선을 돌리고 관심을 꺼버리는 시대이다.
요약하자면 이것이다. 자연해설을 통해 해설사들은 재미와 감동, 의미와 가치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 눈 앞에 있는 사람들과 진심을 갖고 어울릴 수 없다면 그 모든 것들이 시간낭비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 있는데, 아무리 좋은 선물을 넣어주려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안타깝게도 나는 가장 자신 없는 것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친해지는 것이다. 나는 인싸가 아닌 아싸 기질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해설의 시작은 바로 사람들과의 어울림이므로, 이러한 부분에서 나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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