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환경해설사는 말 그대로 자연환경에 대하여 해설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자연환경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잘 띄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식물들이다.
나도 해설사로 일하면서 식물에 대해서 가장 많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것들이 숲에서 눈에 가장 잘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식물들은 동물들에 비해 쉽게 이동하지 않는다. 동물이야 언제든지 사라졌다가 나타날 수 있지만, 식물들은 거의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해설하기가 용이하다.
그러나 식물이 어디 한 두 종인가? 작은 숲에도 종다양성이 풍부하다면 적게는 수십종에서 많게는 수백종의 식물들이 살아간다. 따라서 나에게는 식물을 재밌게 공부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식물에 대한 책들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식물을 인간의 입장에서 '자원'으로 바라본다. 즉, 개별 식물 종들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로운지를 기록한 것들이 많다. 뿌리에 어떤 성분이 있어서 어떤 질병에 좋고, 껍질은 어떻게 쓰고, 꽃이 아름다워 관상적 가치가 있고.. 그런 내용들이다.
만약, 과수원이나 텃밭의 식물들을 해설한다고 하면, 그러한 '자원'적 관점에서 식물을 해설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토마토는 언제 심어서 언제 수확해야 하고, 옥수수는 어떤 맛이고,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어디에 좋고.. 그런 이야기를 해도 위화감이 없다.
하지만, 국립공원같은 보호지역에서 식물을 해설하는데, 그러한 '자원'적 관점에서 해설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역 안의 식물들을 채집하거나 훼손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보호지역에서의 식물 해설은 그런 내용이 아니라, '생태'적 관점에서 해야 한다. 즉, 그 식물이 다른 새들, 곤충들, 포유류 등 다른 생물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 식물의 생존전략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이 식물들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사회적 이익을 주는지, 앞으로 우리가 생태계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런 내용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설사도 평범한 인간이다. 때로는 그러한 '생태'적 관점의 이야기보다, '자원'적 관점에서 식물을 바라보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질 수도 있다. 보호지역인 숲 속에서 뽕나무를 우연히 만났을 때, 그 뽕나무 열매가 얼마나 맛있는지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면, 해설사 입장에서는 참 괴로울 수도 있다. 해설사 본인이 감기 몸살에 걸렸는데, 감기에 효능이 있다는 식물을 보호지역 안에서 만났을 때,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해설사도 인간이기에 그 식물을 채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집에 가서 감기 몸살에 좋다는 자연의 식물들을 공부하고자 하는 욕구가 들 수도 있다.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보호지역 안에서의 식물 해설은 '자원'적 관점이 아닌 '생태'적 관점에서 해야 한다. 그런데, 해설사도 사람인지라 식물 공부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자원'적 관점에서 쓰여진 내용들에 귀가 솔깃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자원'적 내용에 너무 빠져들면 곤란해질 수 있다.
따라서, 식물 공부를 시작할 때는 그러한 '자원'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들을 통해 스스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공부를 하더라도, 결국에는 '생태'적 관점에서 식물을 바라보는 좋은 책들을 찾아서 공부하고, 실제 해설 내용을 '생태'적 관점에서 채워나가야 한다.
다만, '자원'적 관점에서 공부했던 내용들이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이야기는 보호지역에서는 잠시 접어두고, 퇴근 후나 쉬는 날에 텃밭이나 과수원에 가서 그 지식들을 잘 활용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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