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일하는 숲에 중학생들이 단체로 수학여행을 왔다. 그래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숲에 대해 해설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게임도 하고, 나무와 풀에 대한 해설도 하고, 숲을 함께 걷고, 깔깔 거리며 웃기도 하고, 기념품도 나눠주고.. 프로그램은 그럭 저럭 잘 마무리되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와 함께 진행을 맡은 선생님과 같이 복귀하는데 대뜸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것이 뭘까?"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자연해설사는 대체 무엇을 위한 해설을 해야 하는 걸까? 많은 학자들과 해설사들이 이미 여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 해설을 대체 왜 해야 하는 것일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요즘은 도시에도 좋은 공원, 식물원, 등산로가 잘 갖춰진 뒷산, 호수, 기타 생태 관광지들이 다양하게 지어져 있다. 참여자들은 어쩌면 해설사보다 더 다양한 자연 체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도시가 아닌 농어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연 해설이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숲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새소리나 물소리를 듣고, 명상을 하는 등, 오감을 열어주는 체험을 통해 사람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낮춰주고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물론 그 사람들의 건강에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참여자들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거면 된걸까? 꼭 숲에서 스트레스를 풀지 않아도, 스트레스 푸는 방법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노래방에 가도 되고, 피시방에 가도 되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한강에서 맥주를 마셔도 스트레스는 풀린다. 또, 숲에서 스트레스를 풀어봤자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완화해주는 것이 해설 프로그램의 진정한 목적이란 말인가? 동의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에게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주기 위해서 자연해설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떤가? 물론 아주 좋은 말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설사 중에 진정으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일회용 쓰레기를 엄청나게 사용하고, 화석연료를 또 엄청나게 사용하며 지구 환경을 크게 해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말 다행이다. 솔직히 나 자신만 되돌아봐도, 숲에서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과 자연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서, 퇴근하는 길에는 플라스틱에 담긴 음식들을 장바구니 가득 사서 돌아온다. 본인 스스로가 자연 친화적으로 살지 않으며,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그다지 조성되어 있지 않은데, 자연 보호를 위한 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말은 좀 공허하게 들린다. 또,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각종 쓰레기가 엄청나게 많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숲에 한번 다녀가면 플라스틱 물병, 비닐봉지, 포장지 등의 쓰레기가 정말 많이 생겨난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기 위해 자연 해설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이 굉장히 멀어 보인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자연 해설이 필요한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자연 해설이란, 자연에서 지혜를 얻어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슬기롭게, 조금 더 즐겁게, 그리고 조금 더 둥글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할 수 있어도 좋은 해설이겠으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의 중요성이나 행복감을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 한다면 더욱 좋은 해설이라고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나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러한 지혜나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자연해설사인 것이다. 잘 준비된 자연 해설을 통해, 사람들은 단순하고 일시적인 쾌락이나 기념품 같은 것들이 아니라, 삶에서 두고 두고 곱씹어볼 수 있는 지혜를 얻어가게 될 것이다. 웃음이나 즐거움, 상품 같은 것들이 자연 해설에 필요할 때가 있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런 해설을 할 수 있는 해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본인부터 슬기롭게 사는 것, 즐겁게 사는 것, 사람들과 더불어 둥글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삶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식견을 길러나가야할 것이다. 아울러,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책에서 아무리 좋은 지식을 얻어봤자, 해설사의 삶이 그것과 반대라면 아무도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지 못할 것이다. 해설사를 단순히 돈벌이로 생각하거나, 머리로 지식을 많이 쌓기만 하면 잘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생각하면 안되는 이유이다.
키 큰 나무와 키 작은 풀들이 함께 자라고 있다고 하자. 나무와 풀의 이름만 말해주고 지나가는 해설은 1단계 해설이라고 하자. 2단계 해설은 거기서 더 나아가, 왜 그 나무와 풀이 함께 자라고 있는지, 왜 하필 이 계절에, 이 시간에 그러한 모습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해설이라고 할 수 있다. 3단계 해설은 거기서 더 나아가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의, 나의, 당신의 삶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울림을 주는 해설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에 따라 그러한 울림을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베테랑이 아닐까 한다.
해설사는 자연을 보여주며 어떤 말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떤 활동을 제안해야할 것인가? 대체 왜 그걸 해야 하는 것이며, 사람들에게는 그것들이 어떤 도움이 되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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