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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현상 이야기/숲에 관한 잡생각

고상하지 않은 나무

by 토종자라 202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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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면 종종 부숴진 나무를 본다. 누가 홧김에 도끼질을 했던, 벼락을 맞았건, 자기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넘어졌건 간에 말그대로 부숴져버린 것 같은 나무를 볼 때가 있다.

이번에 본 나무는 벚나무 종류였는데, 그 나무는 말 그대로 박살이 나 있었다. 아마 오래 전, 어떤 이유에서든 뿌리채 넘어진 뒤 이렇게 된 것 같다. 속은 텅 비어 있고, 껍데기만 남아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나무는 죽지 않고 봄이 오면 다시 새로운 잎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뿌리 근처에서는 새로운 줄기들을 키워내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완전히 죽은 것 같은 나무가 어떻게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나무의 몸통이라고 볼 수 있는 줄기 안쪽은 죽은 세포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영양소와 물의 통로는 줄기의 바깥쪽에 존재한다. 따라서, 나무의 내부가 크게 썩어서 사라졌다고 해도 겉부분만 잘 살아있다면 나무는 봄에 새로운 잎을 틔워낼 수 있는 것이다.

겉과 속이 같아야 고상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 기준으로 나무들을 바라본다면 고상한 나무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나무는 겉과 속이 다르기에 이렇게 강인하게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봄이 오면 그 나무를 다시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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