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로 청소 이후, 살아남은 개구리 올챙이들은 배수로에 얼마 남지 않은 웅덩이에서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도롱뇽 올챙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들이 모두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배수로 틈새에 물이 고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수로를 만들 때, 여러개의 배수로를 이어붙였는데 그 틈새에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작은 틈새에 혹시 생물이 살고 있을까 싶어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작은 꼬리가 물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주변에 뱀이 없는지 확인한 뒤 조심스레 배수로로 내려가서 그 틈새에 카메라를 들이대보았다. 이럴수가. 나는 새끼 도롱뇽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새끼 손가락이 겨우 들어갈만한 틈새, 그 아래에 새끼 도롱뇽 5마리 정도가 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꽤 공간이 넓어보였다. 이곳은 도롱뇽들의 작은 지하 왕국이었다.
아직은 그 크기가 아주 작지만, 엄연히 다리 4개가 모두 나와 있었다. 보통 도롱뇽들은 자라면서 아가미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아직 아가미가 밖에 튀어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린 도롱뇽들인 것 같았다. 나는 도롱뇽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때였다. 작은 도롱뇽 한마리가 물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대고 포즈를 좀 취해주려고 그랬던 것일까? 그는 엉금엉금 기어서 물 밖으로 나온 뒤, 사냥감을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그 덕분에 나는 새끼 도롱뇽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찍을 수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올챙이보다 약간 큰 도롱뇽이 기어다니는 것 뿐이었지만, 나에게는 마치 거대한 이무기가 동해 바닷속에서 몸을 휘젓는 모습처럼 웅장하게 느껴졌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이 있다. 그 속담을 이 배수로에 적용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온 세상이 쓸려나가도 숨을 구멍은 있다고 말이다. 고난이 닥친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있는 한 끝까지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 새끼 도롱뇽들의 생존 정신을 배운다. 오늘은 참 운수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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