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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초록섬. 한가닥 남은 이름 모를 식물의 줄기 끝에 달팽이 껍질이 간신히 매달려 있다. 달팽이는 일찌감치 죽어버렸는지 껍질 속은 비어 있다. 곳곳에 널부러진 달팽이 껍질들은 불과 며칠 전만해도 이 곳이 달팽이 가족들이 살아갈만큼 풀이 우거진 곳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겨울로 돌아간 듯 초록섬은 다시 황량해졌고, 겨우 살아남은 괭이밥 두 포기는 왠지 공포에 질려 있는 듯 하다.
출퇴근길에 매일 이 곳을 지나치던 나에게, 초록섬은 심심한 출퇴근길에 소소한 즐거움을 주던 곳이었다. 이 삭막한 길바닥에도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 곳이었다. 매일 갈 때마다 새롭고 신기한 발견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때로는 척박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 작은 생명체들을 보며 삶의 지혜와 용기를 얻어가기도 했다.
이번 제초작업으로 인해 초록섬에는 생명이 거의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오늘 괭이밥의 열매가 익어서 씨앗이 튀어나온 것을 보았다. 이곳이 시멘트로 덮혀버리지 않는 한, 그래도 한 줌의 흙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흙 위에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떨어진다면 반드시 초록섬에도 생명들이 돌아올 것이다.
평범한 회사원인 나에게 출퇴근길의 즐거운 관찰 시간을 선물해준 초록섬의 생명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6개월 간의 관찰기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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