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처음 발견하는 일은 가슴 설레이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그런 발견을 하는 것은 더욱 설레이는 일이다.
오늘 출근길에도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했다. 초록섬에 가보니 몇일 사이 강아지 꼬리 같기도 하고, 송충이 눈썹 같기도 한 강아지 풀들이 초록섬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민들레의 시대는 가고, 자주달개비의 시대도 가고, 이제는 너희들의 시대가 왔구나.
쥐며느리 한 마리가 열심히 풀을 기어오르기에, 그 모습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런데 쥐며느리가 겁을 잔뜩 먹고 벌벌 떨다가, 풀잎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겁을 줄려고 한 건 아닌데, 쥐며느리에게 갑자기 미안해졌다. 다음부터는 바닥을 기어다닐 때만 찍어야겠다.
그런데, 쥐며느리가 떨어진 자리를 가만히 보니 달팽이 껍질 같은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달팽이가 흙 구덩이에 몸을 숨기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이쯤되면 초록섬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이 달팽이를 달팽이 대감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이 달팽이 대감은 대체 뭘 먹고 사는 걸까? 물만 빨아먹고 사는 것일까? 하루 종일 이렇게 초록섬에서만 천천히 기어다니면서 지내는 것 같은데, 심심하지 않을까?
점심시간에 다시 나와서 이 초록섬을 관찰하였는데, 검은색 작대기 같은 것이 풀 사이를 날아다녔다. 자세히 보니 꽁지에 민트색 띠를 두른 듯한 잠자리가 풀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민트색이 참 특이해보였다. 초록섬에서 노란색, 흰색, 초록색, 갈색, 검은색, 붉은색을 다 보았는데, 이렇게 쨍한 민트색은 처음 보았다. 누가 평범한 잠자리를 잡아다가 꼬리에 민트색 물감을 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였다. 이 민트 잠자리는 대체 정체가 뭘까?
민트 잠자리를 본 뒤 이만 돌아가려는데, 지난 며칠간 기다리고 기다렸던 괭이밥의 노란 꽃이 피어있었다. 그 작은 노란 꽃을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물론 괭이밥 꽃은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꽃들은 나에게 전혀 특별해보이지 않았다. 내가 오직 궁금했던 것은 초록섬의 괭이밥에도 꽃이 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꽃이 피었다. 바로 오늘.
초록섬은 나에게 그저 익숙한 출퇴근길 풍경 중 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이 곳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관심을 갖게 되니 자세히 관찰하게 되고, 자세히 관찰하다보니 신기한 것들이 많아서 더욱 자주 관찰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이 곳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다른 곳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도, 이 특별한 장소에서 일어나게 되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마치 모든 우주에서 이 초록섬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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