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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이야기/기타 포유류

청설모에게 배우는 직장생활 지혜

by 토종자라 2022.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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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꼬리털이 좀 빈약하다.

 대부분의 한국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자신의 성과 직책을 붙인 이름으로 불린다. 즉, 김주임, 박사원, 최과장 등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 출근을 했는데 직장 상사가 "김대리, 자네 이름은 김민수이지만, 사실상 김대리라는 이름으로 훨씬 더 많이 불리니까 아예 이름을 김대리로 바꿔." 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굉장히 황당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숲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한 동물이 실제로 있다. 이 동물은 바로 청설모이다. 청설모라는 이름은 "청서"와 "모"가 붙어서 만들어진 것인데, "청서"는 푸른 쥐를 의미하고 "모"란 청설모의 꼬리털을 의미한다. 청서의 꼬리털이 고급 붓의 재료로 인기가 높다 보니, 아예 이름이 청설모가 된 것이다. 즉, 청서라는 원래 이름보다, 이 쥐의 쓰임새를 의미하는 말로 더 많이 불리다보니 이름이 아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 사례는 기능이 본질을 앞도하여 이름까지 바꿔버린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청설모는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자신의 원래 이름보다 직책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한국의 직장인들처럼 말이다.
 각설하고, 이제는 한국의 숲에서 꽤 흔하게 볼 수 있게 된 청설모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직장인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것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물론 억지로 이야기를 짜맞추는 것 같을 수는 있겠으나.. 그냥 한번 써보기로 한다.

1. 아지트를 만들자

 집이 몇 채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세 채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2~3채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청설모의 집은 몇 채일까? 보통 청설모는 3~4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면 청설모의 인생이 나보다 낫다고 볼 수 있다.

 청설모가 이렇게 많은 집을 만드는 이유는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한 집에서 오래 지내다보면 아무래도 천적인 참매 등에게 쉽게 위치가 노출된다. 위치가 노출되었다고 생각이 들면 집을 옮겨서 지내는 것이다.

 직장인도 이러한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집은 많이 가질 수 없겠지만 아지트를 몇 군데 가지고 있는 것은 가능하다. 나를 예로 들면, 직장생활 1년차 정도에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생활방식 때문에 크게 우울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회사 근처에 만화카페를 찾아내어 퇴근길에 항상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직장생활의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들게 되었다. 직장에서 힘든 일이 생겨도 "잘 끝내고 이따 퇴근하면 만화카페 가서 놀아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청설모가 천적을 피해서 집을 많이 갖는 것처럼, 직장인도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아지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2. 일과 휴식의 균형을 잘 잡자

 청설모의 생김새를 잘 보면,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꼬리이다. 쥐를 생각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지렁이 같은 얇은 꼬리를 생각한다. 그러나 청설모의 꼬리는 거의 자신의 몸통만큼 크다. 왜 이렇게 꼬리가 클까? 바로 중심을 잘 잡기 위해서이다.

 서핑을 할 때 팔을 좌우로 뻗는 것이나, 외줄타기를 할 때 긴 평행봉을 드는 것을 생각해보자. 몸이 왼쪽으로 기울면 팔이나 평행봉을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무게 중심을 잡아야 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청설모의 꼬리도 무게 중심을 잡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꼬리가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포식자의 눈에도 잘 띄인다는 것이므로 청설모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리가 커진 것은 그만큼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청설모의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직장인의 삶에 비유하자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일과 휴식의 균형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청설모의 꼬리가 몸통만큼 크지 않다면 더욱 쉽게 나무에서 떨어지게 된다.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고,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더 빨리 포식자에게 잡아먹힌다는 것이다.

 휴식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직장인들이 있다. 그러나 소진현상을 겪어본다면 그 생각은 쉽게 변할 것이다. 휴식은 일보다 중요하면 중요하지, 덜 중요하지 않다. 직장생활의 긴장감이 해소되지 않으면 몸의 면역력이 회복되지 않아 육체적,정신적인 질병에 더욱 쉽게 노출된다. 청설모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일과 휴식의 균형을 잘 잡지 못하면 언젠가는 직장에서도 나가 떨어질 것이다.

3. 삽질을 많이 해보자.

 우리가 직장에서 헛일을 하면, 흔히 삽질했다고 한다. 군대에서 병사들에게 벌을 줄 때 의미없는 삽질을 시켜서 땅을 파게 하는 것에서 유래한 말인 것 같다. 삽질의 기준에서 보면 사실 청설모처럼 삽질을 많이 하는 동물도 없다.

 청설모는 가을에 떨어진 도토리, 밤, 가래 등을 열심히 땅에 숨긴다. 겨울에 찾아서 먹기 위해서인데, 사실 실제로 겨울에 청설모가 먹이를 찾아먹는 비율은 굉장히 낮다. 청설모의 먹이를 노리는 까치나 까마귀가 훔쳐먹기도 하고, 청설모가 그냥 잊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숲에서는 청설모처럼 삽질을 많이하는 동물도 없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청설모가 그렇게 잊어버린 도토리에서 싹이 나서 큰 숲을 이룬다는 것이다. 청설모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청설모는 숲을 키우는 데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이다.
삽질이라고 하면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직장에서, 얼마나 많은 직장인들이 삽질을 하고 있는가? 월요일 아침, 한반도 곳곳의 사무실에서는 "삽질했네" 라는 말이 정말 많이도 터져 나온다. 한번 계산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아마 적어도 수십만번은 될 것이다.

 직장생활은 삽질의 연속인 것 같다. 열심히 준비한 사업이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남 좋은 일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그 과정에서도 얻는 것이 있다. 속 편한 소리라고 욕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했더니 실패했다." 라는 경험 자체가 큰 자산이다.

 

 나는 청설모보다는 청서라는 이름을, 청서라는 이름보다는 "솔쥐"라는 이름을 더 좋아한다. 청설모가 솔방울을 좋아하기도 하고, 소나무처럼 푸른 나무가 많은 숲에서 자주 발견되기 때문이다.

 최초의 청설모에 대해 생각해본다. 떨어진 잣을 주워먹고 사는 한 무리의 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미친 쥐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직접 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잣을 따먹을 거야." 모두 가 그 쥐를 말렸다. 매에게 발견되어 죽고 싶지 않으면 그러지 말라고 모두가 그 쥐를 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쥐는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고, 그런 용기있는 쥐들이 결국 청설모, 아니 솔쥐로 진화했을 것이다.

 직장생활도 시간이 지날수록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럴 때 최초의 솔쥐에 대해 생각해보자. 두려워서 혹은 낯설어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 속에 어쩌면 "진화"의 길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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