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간 아동을 대상으로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고, 다른 프로그램을 참관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프로그램 운영 주의사항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아주 기본적인 내용일 수 있지만, 나는 이런 기본적인(?) 내용도 모르고 이 분야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일단 생각나는 것부터 적을 텐데, 앞으로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가야 할 것이다.
(1) 성인의 관심사와 아동의 관심사는 다르다. 아이들의 관심사를 파악하라.
- 생태교육을 하는 강사 입장에서는 탄소중립, 생물다양성, 멸종위기종,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같은 주제가 중요하다. 왜냐? 그러한 주제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태교육 강사가 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주제들에 대한 지식과 전문성이 있어야 강사활동을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관심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먹고 사는 문제가 달린 분야인데 관심이 없겠는가?
- 하지만, 교육에 오는 아동들이 전부 생태교육 강사를 자신의 진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있더라도 극소수인 경우가 많다. 내가 학교 다닐 때를 한번 생각해보자. 기후위기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있었는가? 나는 없었다. 나는 친구들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많고, 게임이나 운동에 관심이 많고, 용돈에도 관심이 많았다. 학업과 진로에 대한 관심도 조금 있었다. 자연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 아이들이 지금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교육 기획을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 강사 스스로 생각해도 재미없는 교육은 참여자 입장에서도 당연히 재미없다.
- 입장을 바꿔서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교육생이라고 한번 생각하고 내가 기획한 교육을 한번 보자. 그것이 재미가 있는가? 시간을 내서 참여하고 싶은가? 만약 그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기획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 강사 스스로 생각해도 재미가 없으면, 교육을 받는 참여자들에게도 당연히 재미가 없다. 아니, 더욱 더 재미가 없다. 강사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재밌는 교육, 교육하는 날이 기다려지는 교육, 설레이는 교육, 내 가족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교육, 그런 교육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교육이라면 강사 자신부터 신나게 준비하게 되고, 교육이 잘 운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3) 동적 활동, 정적 활동, 강의의 비율과 순서를 고려하라.
- 스포츠, 야외놀이 등은 동적 활동에 가깝다. 그림 그리기, 시 쓰기, 음악 듣기, 누워 있기 등은 정적 활동에 가깝다. 탄소중립이 어떻고, 멸종위기종이 어떻고.. 강사가 주로 말하는 것은 강의라고 부르자. 그렇다면 이 3가지 활동의 비율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 물론 이것은 참여자들의 특성과 교육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2시간을 전부 강의로 채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아이들은 바로 하품을 하고 졸려하고, 다음부터는 그 강사를 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동적 활동이나 정적 활동으로 모든 교육을 채우는 것도 무리가 있다. 동적 활동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고, 정적 활동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 나는 기본적으로 동적 활동과 정적 활동, 강의의 시간 비율을 1:1:1로 잡는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강의를 먼저 하고, 정적 활동을 한 뒤, 동적 활동으로 옮겨간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기본적으로는 이렇게 교육을 짠다는 것이다. 왜냐? 동적 활동을 먼저 해서 아이들의 분위기를 띄우면, 그 다음에 정적 활동과 강의를 할 때 분위기가 너무 침체되기 때문이다.
(4) 쓰레기가 될 기념품 만들기 체험은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
- 무드등, 부채, 선풍기, 손난로, 손수건, 에코백, 텀블러, 머그잔, 화분... 생태교육을 할 때 이러한 물건을 다같이 만드는 활동을 넣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물론 교육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러한 물건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별로 없다.
- 생태적인 의미로 포장하여, 쓰레기가 될 기념품을 만드는 것은 차라리 안하는 것이 낫다. 굳이 해야한다면 최소화해야 한다고 본다.
(5) 아동들의 체력을 고려하여 프로그램 동선을 쉽고 간단하게 짜라.
- 요즘 아이들이 체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10명의 아이가 있으면 아이들 사이의 편차가 크다. 생태 교육의 특성상 야외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른을 기준으로 해서 동선을 짜면 아이들이 힘들어할 가능성이 생긴다.
-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에 교육을 할 때는 특히 동선을 최대한 간결하고 단순하게 짜야 한다. 실제 교육 상황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불쑥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에,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6) 경쟁을 시킨 뒤, 이긴 사람에게만 선물을 주는 방식을 피해라.
- 이것은 나의 경험인데, 숲 속에서 아이들에게 퀴즈를 낸 뒤 맞춘 사람에게만 선물을 준 적이 있다. 교육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약 20명의 아이들 중에 3명이 울었다. 자신은 선물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그 3명 중에 2명은 다음 번에는 이 교육에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아이들이 문제인 것일까? 아니다. 강사인 내가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감정적으로 예민한 시기인 아이들을 데리고 별 거 아닌 퀴즈를 낸 뒤, 아이들 입장에서는 꼭 갖고 싶어지는 선물을 1~2명에게만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경쟁을 해야 하는 게임이나 퀴즈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7) 여러 명의 아동들을 한 팀으로 묶을 때는 신중하라.
- 이 또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아마 실제로 교육을 진행해본 강사 선생님들은 한번쯤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아이들을 4명씩 짝지어 팀을 만든 뒤, 팀끼리 경쟁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까? 일단 4명씩 팀을 짜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강사가 대충 팀을 짜면, 팀 내부에서 분란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프로그램 시작부터 아이들의 기분이 상하는 것이다.
- 또, 4명이 팀을 짜면 그 안에는 게임을 대충하는 아이, 게임을 하기 싫은 아이, 게임을 잘 하고 싶은 아이, 승부욕 높은 아이들이 골고루 섞이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물론 강사가 진행을 아주 잘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4명이서 게임 결과를 두고 '니가 잘했네', '니가 못했네' 하며 싸우게 될 수도 있다. 어른들을 데리고 게임을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 팀을 짜서 게임을 해야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8) 기본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라.
- 마지막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생태교육 강사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강사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 어떤 분야든 간에, 그 분야를 오래 물고 늘어져서 전문성을 쌓는 사람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자신이 만나는 대상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진 경우가 많다. 당연한 것 아닌가?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그 분야를 계속 파고들기가 힘들다. 특히 교육처럼 교육 대상과 끊임없이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분야에서 교육 대상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어떨까? 교육 대상자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그 사실을 알아채고, 다음 교육에는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내가 자주 반성하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자연만을 좋아한다면, 생물학자가 적합하다. 그러나 생태교육을 진행하는 교육자나 강사는 자연 뿐만 아니라 교육 대상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지 종종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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