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찰하기/보도블럭 틈새 생물 관찰기

<보도블럭 틈새의 식물들> (12화) 2023년 4월 26일

by 토종자라 2023. 4. 26.
728x90

 민들레, 냉이, 꽃다지, 광대나물, 그리고 아직 정확히 이름을 알지 못한 3종의 식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던 버스정류장 앞 공터,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는 갑자기 풀을 뽑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떤 것은 비틀고, 어떤 것은 뿌리채 뽑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일주일 사이, 초록섬의 식물들은 재앙을 만났다. 근처에 사는 주민일 수도 있고,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일 수도 있고, 그냥 지나가던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의 눈에는 아마 이 풀들이 그저 동네의 미관을 해치는 잡초들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을 비난하며, 이 초록섬의 식물들을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작은 공터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이러한 일은 길거리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들에게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초록섬의 식물들이 잘려나간 것은, 나처럼 출퇴근 길에 이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에게는 아쉬운 일이다. 이곳은 내가 식물과 곤충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배울 수 있었던 작은 학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왠지 볼썽 사납고 지저분해 보이는 잡초였을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당분간은 이 초록섬에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운좋게 살아남은 식물들은 이 틈을 타 번성할 것이고, 식물들이 만들어놓은 씨앗들이 땅에 퍼져 다시 싹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