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라는 장소에서 가장 번성하는 포유류를 뽑으라면 당연히 인간이다. (인도나 동남아에 가면 가끔 사람보다 원숭이가 더 많이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한국의 도시에는 어딜가나 길고양이가 번성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서울의 관악산 같은 곳에는 야생 개떼들도 종종 발견되지만, 사실 개보다는 고양이가 일반적인 주택가에서 야생으로 살기에는 더 적합하다. 개들은 들판에서 집단으로 사냥감을 쫒아가서 사냥하는 방식에 특화되어 있지만, 고양이들은 들판을 뛰어다니기 보다는 단독으로 사냥감에게 조용히 접근하여 한번에 덮치는 방식으로 사냥을 한다. 따라서 여기저기 몸을 숨길 수 있는 복잡한 주택가가 고양이에게는 적합한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수직의 시멘트 세계가 삭막해보이기는 하지만, 고양이에게는 좋은 삶터가 된다. 곳곳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 먹이가 되어 주고, 하수구의 쥐들과 비둘기는 간식과 놀잇감이 되어 준다. 또 길고양이를 가엾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는 먹이도 있으니까 고양이에게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택가의 길고양이는 골칫거리다. 아니, 극단적으로 말하면 종종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유해조수로 지정해서 모두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헤집어 놓고, 따뜻한 자동차 엔진룸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지각하게 만들고, 집에서 나올 때 갑자기 튀어나와 우리를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귀여운 참새나 다람쥐를 잡아먹기도 하고, 아예 산으로 들어가 멸종위기종인 새들을 잡아먹기도 한다. 발정이 나면 얼마나 시끄러운지 소름끼치는 비명소리를 내기도 한다.
지금으로써 인간이 길고양이와 공생하는 최선의 방식은 각기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들을 중성화시켜, 번식은 하지 않으면서도 그 지역에 다른 고양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도록 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개체수 조절 전략의 일환으로 중성화된 고양이에게 일종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귀의 일부를 자르는 것이다.
오늘도 귀가 잘린 고양이들을 퇴근길에 만난다. 주인을 잘 만난 고양이는 20년도 산다지만, 길어도 3년 정도인 길고양의 소중한 하루를 나는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한 번 노려보고는 두려움 가득한 눈빛을 남긴 채 빌라 사이의 좁은 담벼락 틈새로 사라진다. 왜인지는 몰라도, 고양이의 그림자에는 왠지 모르게 측은한 구석이 있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들이 사라진 주택가는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심심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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