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로에 이무기가 산다>/도롱뇽
작년 여름이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은 뒤 회사 휴게실에서 누워 있었는데, 문득 산책을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무실 근처를 돌아다녔는데, 알고 보니 사무실 뒷산에 꽤 유명한 둘레길 코스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시간만 되면 점심시간에 둘레길 코스를 걸으며 산책을 했다. 산책로 오른쪽에는 배수로가 길게 설치되어 있었고, 군데 군데 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나는 그 배수로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산책을 하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배수로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개구리의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개구리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 300m 정도 되는 배수로에 10마리 정도의 개구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콘크리트 배수로, 그 배수로에도 생명이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겨울이 왔고, 눈이 쌓여서 나는 한동안 산책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초, 나는 다시 개구리들을 만나기 위해 눈 녹은 산책로에 찾아갔다. 개구리들은 볼 수 없었지만, 개구리들이 낳은 알 뭉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다른 개구리 알들과 다르게 생긴 알뭉치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개구리들의 알뭉치는 그냥 둥그렇게 생겼는데, 바나나처럼 길쭉하게 생긴 알뭉치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 동네 뒷산에서 친구들과 도롱뇽 알을 찾으며 놀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 그 바나나처럼 생긴 알뭉치는 도롱뇽의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300m 정도 되는 배수로에는 물이 고인 곳이 얼마 되지 않는다. 한 50m나 될까. 그리고 그 곳에는 물이 5cm에서 8cm 정도 밖에 고여 있지 않다. 어떨 때는 배수로의 물이 모두 바싹 말라버리기도 한다. 산책로 왼쪽은 절벽이고, 그 아래에는 마을이 있다. 산책로 오른쪽은 숲이다.
이런 척박한 곳에 도롱뇽이 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내가 아는 도롱뇽은 아주 깨끗하고 조용한 계곡이나 연못에 사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지난 1년간 이 배수로를 관찰하면서 단 한번도 도롱뇽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내가 본 것이 정말 도롱뇽의 알일까? 개구리의 알뭉치를 보고 내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도롱뇽이 애초에 많이 사는 큰 연못이나 계곡이었다면 이렇게 집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롱뇽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인데 도롱뇽의 흔적이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도롱뇽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 결과, 도롱뇽은 주로 어두운 밤에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부로 호흡을 하기 때문에, 수질 오염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과 숲과 계곡이 사라지면서 서식지가 많이 파괴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휴일이었던 나는 한참동안 고민한 끝에 저녁 8시쯤 사무실 뒤에 있는 산책로에 올라가서 배수로를 수색해보기로 했다. 왜 고민을 했는가? 일단 휴일 저녁 8시에 회사 근처에 간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또한, 왠지 이 나이를 먹고 도롱뇽을 찾으러 밤산책을 간다는 것이 그다지 생산적인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나의 자격지심이었다.
스마트폰에 손전등 기능이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서 언덕 위로 올라갔다. 주변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숲 속에서는 노루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좀 무서웠다.
스마트폰 불빛을 비추며 배수로를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한 15분 동안 수색을 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들이 놀라서 도망치는 모습만 실컷 관찰했다. 슬슬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히 어딘가에는 도롱뇽이 있겠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는 것 뿐일거야.' 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체념하고 그냥 집에 가려고 했는데,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다시 스마트폰 손전등을 키고 수색을 했다. 그런데 그 때, 나뭇잎 하나가 움직였다. 나는 그것이 물에 빠진 민달팽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민달팽이에게는 다리가 달려 있었다.
민달팽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도롱뇽이었다. 그것도 내 손바닥 만한 크기의 도롱뇽이 유유히 배수로에 고인 물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곧장 산책로에 엎드린 뒤, 5번 정도 플래시를 터뜨려 겨우 사진을 찍었다. 야생동물들에게는 밝은 불빛이 큰 피해를 준다고 신문 기사에서 읽었기 때문에, 더 이상은 하지 않았다. 물론 이 정도도 도롱뇽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고인 물"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배수로 속의 고인 물처럼 고마운 것이 없었다.
배수로가 생기면, 기존에 있던 계곡으로 흘러가던 물길이 막힌다. 배수로는 물을 더 빠르게 하천으로 배출시켜 사람이 다니는 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이 배수로를 만들 때, 도롱뇽이나 개구리 같은 생물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힘은 위대한 것이다. 도롱뇽 한 마리 한 마리는 연약하기 짝이 없지만, 도롱뇽이라는 생물의 적응력은 이렇게도 강한 것이다.
'탄소중립'을 실천해서 '지구를 지켜야 한다'거나,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요즘도 계속 들리고 있다. 물론 다 중요한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자연 속에서 무엇인가 즐거운 것, 재밌는 것, 신기한 것, 행복한 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거나, 그 경험이 아주 적은 사람들에게 '자연을 지켜야 한다', '자연을 지켜야 인간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같은 구호를 들려줘봤자 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첫째, 자연과 관련된 경험이 없으므로 자연이 무엇인지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둘째, 자연에서 이로운 것을 얻은 적이 없으므로 자연을 왜 지켜야 하는지 공감이 안된다.
나는 도롱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도롱뇽을 본 것이 30년 평생 처음이다. 그러나 산책을 하다보니 개구리 알을 보게 되었다. 개구리 알을 보다 보니 도롱뇽 알이 눈에 들어왔다. 도롱뇽 알을 보니, 직접 도롱뇽을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저녁 8시에 집에서 버스로 50분 거리에 있는 회사 사무실 뒷산에 올라가 도롱뇽을 만나고 왔다. 그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도롱뇽 사진을 찍고 싶고, 그 도롱뇽으로 글을 쓰고 싶고, 책을 써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망이 있었다.
자연을 지키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자연과 관련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촉진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첫째,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지속가능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퍼뜨려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산나물이나 열매를 마구 채집하도록 하거나, 나무를 마음대로 베어서 목재로 쓰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조금씩 자연에 편에 서게 되고, 자연의 지지자가 된다.
누군가 이 배수로를 흙으로 메워버리려고 하면, 아마도 나는 반대할 것이다. 도롱뇽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신기한 생물에 살아가는 서식지를 파괴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 도롱뇽으로부터 내가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배수로 속의 도롱뇽, 나는 그를 '배수로의 이무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는 나에게 많은 생각의 주제들을 던져주었다.
Q. 여러분의 주변에는 자연 가까이에서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기회가 될 때 그 곳을 찾아가서 생물들을 관찰한 뒤 기록을 남겨보자.